[권은경] 굴락, 아우슈비츠, 관리소
2023.08.25
이날을 8월 23일로 정한 것은 바로 스탈린의 소련연방과 히틀러의 나치독일이 협력하자고 손을 잡은 날이 바로 1939년 이날이기 때문인데요. 당시 양국은 자기 나라의 외무상들을 내세워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약’에 서명하고 평화와 상호 불가침을 공개적으로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비공개 보충 협약을 체결해 구소련과 나치 독일, 두 나라가 동유럽 지역을 ‘평화적으로’ 나눠 가지기로 했습니다. 즉 서쪽의 독일과 동쪽에 있는 소련이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중부유럽 국가들을 동서로 길게 갈라, 각기 영향권 내에 있던 가까운 나라들을 나눠서 차지하자는 비밀 협약이었습니다. 이로써 히틀러는 구소련의 간섭 없이 협약 서명 후 바로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9월 1일, 폴란드를 서쪽에서 공격했고, 9월 중순에는 소련이 폴란드 동쪽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파괴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세계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나 정부 기관 연구소 등은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지역의 사망자 수가 대략 2천 만 명 이상이라고 하는데요. 현재 북한 인구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대규모 사망자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악명 높기로 유명한 집단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등에서 6백 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여러 지역 소수민족이 나치 독일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구소련에서도 민간인과 군인 2~3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합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수의 인명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나치 독일 정권이 자행한 제노사이드 즉 인종 말살 정책 때문입니다. 또 소련이 점령했던 폴란드 등지에서는 민간인을 체포하거나 강제 이주시키고, ‘굴락’이라고 불리는 정치범수용소에 구금하거나 숙청 또는 단체로 사살하는 방식으로 점령했던 국가의 국민들을 비인간적으로 처리했습니다. 또 수백만에서 수천의 희생자를 낳은 것은 정치범수용소에서 자행된 인종청소와 강제노동, 강제 이주 또 전쟁 중 민간인 학살 등의 잔혹 범죄들입니다.
유럽이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의 날’을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08년에는 이날을 맞이해 400명이 넘는 유럽의회 의원들이 서명한 선언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선언문은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의 침략 행위의 일환으로 자행된 대규모 민간인의 추방, 살인, 노예화는 전쟁 범죄와 반인도 범죄에 해당됩니다. 국제법에 따라 전쟁범죄와 반인도 범죄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적시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80년 전의 희생자를 지속적으로 추모하며 인류의 역사에 이 같은 잔인한 기록을 다시는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데요.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한반도의 한쪽에선 지금도 반인도 범죄가 자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북한에 존재하는 정치범 관리소입니다. 북한에서 ‘반인도 범죄’가 자행되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8월 중순이었습니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에서 들려오는 증언의 잔혹함에 주목하게 되고 2013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국제 인권법 권위자들을 조직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조사하도록 위원회를 만들게 됩니다. 오스트랄리아(호주)의 대법관 출신인 마이클 커비를 중심으로 결성된 유엔의 조사위원회는 2013년 7월 중순부터 서울을 방문해 탈북민들과 한국 전쟁 중 또는 이후에 북한으로 납치된 사람들의 가족들, 북한 전문 연구원들 백여 명을 만나서 북한의 반인도 범죄 문제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8월 중순, 공개청문회를 개최하고 북한당국이 자행한 잔혹 범죄, 정치범관리소의 반인도 범죄에 대한 증언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됩니다.
이렇게 조사한 내용이 그 다음해 2월에 공개됐는데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결과 보고서는 북한의 정치범관리소에서 반인도 범죄가 자행되고, 이에 대한 책임은 ‘최고지도자’에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북한의 관리소에서 발견된 반인도 범죄는 앞서 언급했던 독일의 나치 정권이나 소련의 스탈린이 자행했던 잔혹 인권 범죄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조사위원회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권력을 가진 기관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의도적인 인권 범죄를 광범위하게 저지르는 반인도 범죄가 북한당국의 정치범 관리소에서 자행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합니다.
물론 그 이후 북한 사회는 주민들 스스로 장마당에서 장사하고 공장이나 기업소에 수입금을 바치며 개인 사업을 통해 돈도 벌면서 돈 가진 자들은 어느 정도의 불안정한 자유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교화소 등 법기관에서는 폭행과 고문이 사라졌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소련의 집단수용소 ‘굴락'과 나치의 ‘홀로코스트' 같은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의 존재입니다. 1940년대 인류를 경악하게 한 반인도 범죄가 자행되었던 시설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한반도에서 존재한다는 것인데요. 정치범 관리소를 운영하는 상황에서는 북한 당국이 유엔 무대에서 어떤 아름다운 주장을 하더라도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며, 외교 관계에서도 정상 국가로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
관리소의 해체만이 답입니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없는 반인도 범죄에 대한 책임규명 문제는 그다음에 처리할 문제로 따라 올 겁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양성원, 웹팀:김상일